Better Days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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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nterview: Min Choi of Sulki&Min

    This is a broad question but we were wondering, if from your point of view, there was anything you could identify as being quintessential Korean graphic design? And if not something specific, are there some attributes that may embody quintessential Korean graphic design?

    이것은 꽤 일반적인 질문입니다만, 슬기와 민의 관점에서, 전형적인 한국 그래픽 디자인 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까? 만약 딱히 특별한 게 없다면, 전형적인 한국 그래픽 디자인을 이루고 있는 어떤 특성이나 속성이 있을까요?

    It’s a difficult question, and something I have never pondered. I don’t want to make any sweeping generalization, but I think many Korean graphic design is characterized by over-designing. There seems to be a fear of emptiness. If you leave something free of unnecessary information or ornaments, they’ll accuse you of not having done enough work! Also, many Korean design is obsessed with the notion of “friendliness.” A lot of people worry that design without overtly friendly gestures would alienate the public.

    어려운 질문이고, 깊이 고민해 보지 않은 질문이기도 합니다. 일반화하고 싶지는 않지만, 한국 그래픽 디자인에는 디자인 과잉이라는 특징이 있는 듯합니다. 공백에 대한 두려움일지도 모르죠. 필요 없는 정보나 장식을 더하지 않고 작업을 마치면, 흔히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꾸지람을 듣곤 합니다. 또한, ‘친근함’에 집착하는 디자인도 많습니다. 지나칠 정도로 친절하고 친근한 제스처가 없으면 일반인이 소외감을 느낄 것이라 두려워하는 모양입니다.

    We here, at Ohndohl, have always been fascinated by characters like Han Solo, from Star Wars. We call them the reluctant heroes. Those who have just ended up as heroes, as opposed to trying to be heroes. We cannot be certain, but our perception is that your studio, your practice, your roles as educators and your publishing imprint have nudged you into a similar position here in Korea. Some might call this, unofficial leaders of graphic design in Korea. Many designers, with great respect, look to you in this capacity. We are wondering if this has affected the way you work or think? Is there a certain responsibility you have towards graphic design in Korea because of this unofficial position?

    우리는 온돌에서 스타워즈의 한 솔로와 같은 캐릭터에 매력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영웅이 되고싶지 않은 영웅’ 혹은 ‘비 자발적 영웅’ (reluctant hero)이라고 부르죠. 영웅이 되려고 노력하지는 않지만 결국 영웅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딱 이와 같다고 할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슬기와 민의 스튜디오, 작업, 교육가로서의 역할, 그리고 출판 활동이, 결국 슬기와 민을 한국에서 이와 유사한 위치에 놓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마 이러한 상황을 한국의 그래픽 디자인계에서의 ‘비공식적 리더’ 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많은 디자이너들이 슬기와 민의 이러한 능력을 매우 존경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런 측면들이,  슬기와 민의 작업 방식이나 사고 방식에 영향을 미쳐 왔는지 궁금 합니다. 이런 ‘비공식적 리더’의 위치 때문에 한국의 그래픽 디자인계에 어떤 책임감을 느끼기도 하는지요?

    We hardly see any such signs, or feel the pressure of responsibility. Even if such perception exists, it wouldn’t affect the way we work.

    다른 이들이 저희를 그렇게 여긴다는 인상을 특별히 받거나 그 때문에 부담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설사 여러분께서 저희를 그렇게 보신다 해도, 저희가 일하는 방식은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We have read several times and heard in lectures that Specter Press has been a unique opportunity for your own curatorial content and voice to find a home. What are some of the things Specter Press is striving to do that may differ from some other similarly framed imprints? If Specter Press had a voice, what might that be or what might it say?

    우리는 스펙터 프레스가 슬기와 민이 큐레이토리얼 한 작업 내용들과 발언이 자생할 수 있는 공간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특별한 기회가 되어 왔다는 내용을 다양한 지면과 강연을 통해 접해 왔습니다. 스펙터 프레스가 다른 비슷한 형태의 출판사들과는 달리 추구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만약 스펙터 프레스에게 발언권이 주어진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까?

    Specter Press is a very personal enterprise, in that we only work with people we like, and produce things that we find worth sharing. But we are not very concerned about any consistent voice. We don’t have a long-term plan for it, so its voice can change any time.

    스펙터 프레스는 무척 개인적인 사업입니다. 저희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저희가 나눌 만하다고 느끼는 내용을 나누려고 벌이는 사업이니까요. 다른 출판사와 특별히 구별되는 특징이 무엇인지는 깊이 고민해 보지 않았습니다. 스펙터 프레스에는 일관성 있는 방향이나 비전도 없습니다. 장기적인 계획도 없고요, 따라서 그 성격은 언제든 변할 수 있습니다.

    From several first hand experiences, we’ve witnessed that your translation adeptness is remarkable. We’ve also seen an extremely high proficiency and command of the English language. As a visual communicator, has this keen ability to translate infiltrated your work? Has such a language immersion, provided any unique perspectives into other areas of your design life? Education? Publishing?

    몇몇의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우리는 슬기와 민의 번역이 놀라우리만큼 적확함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영어라는 언어를 대단히 능숙하게 사용하고 활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시각 전달자(visual communicator)로서 이러한 섬세한 능력이 당신의 작업에도 반영되어 있습니까? 이러한 언어에의 몰입이 디자인 활동 이외의 부분에서도 독특한 측면들을 볼 수 있게끔 합니까? 교육이나 출판 부분에서는 어떻습니까?

    I am very interested in language, and its appropriate use. I am fascinated by all those style manuals, and the astonishingly complex Korean orthography. I appreciate the care with which people have treated verbal language, and wish to see the same care applied to visual communication. It doesn’t mean that I advocate any “pure” or “correct” use of language. I’m simply talking about a certain consciousness, as well as the deep pleasure of dealing with the complex system of language. But in practical terms, my interest in verbal language has usually meant more work for me. When I work on a project, I want to copy-edit the text before I start any designing. I do a lot of “silent editing” without consulting with involved editors or writers. When I don’t have time for it, I become depressed.

    Translation has been one of my hobbies. For me, it’s as much a way to explore the materiality of language, as acquiring specific knowledge. Although I’m not as proficient in English as you described, I do find translating very rewarding. It’s about navigating in two parallel systems, and when you feel that you have succeeded in building a nice bridge between the two at least temporarily, the pleasure is enormous.

    저는 언어에, 그 적절한 사용에 관심이 많습니다. 저는 온갖 편집 매뉴얼이나 말도 안 되게 복잡한 한국어 어문 규정에도 깊은 매력을 느낍니다. 사람들이 언어를 그처럼 세심하고 꼼꼼하게 다루려 한다는 사실이 고맙고, 또 시각적 소통도 그처럼 세심히 배려했으면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질적인 면에서, 언어에 관심이 많다 보니 일만 늘어나기도 합니다. 저는 디자인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글부터 다듬는 편입니다. 편집자나 저자에게 묻지 않고 은근슬쩍 글을 고치기도 합니다. 그런 작업을 할 시간이 없으면 우울해지기까지 합니다.

    번역은 제 취미입니다. 덕분에 새로운 지식을 얻을 뿐만 아니라, 언어의 물질성을 탐구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그처럼 영어에 능숙하지는 않습니다만, 확실히 번역은 보람 있는 활동입니다. 번역이란 결국 두 평행하는 체계 사이를 누비는 일이고, 두 세계 사이에 잠시나마 그럴듯한 다리를 놓았다고 느낄 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Your studio remains also quite involved in the fine arts through exhibitions, curation and installations. There have been many a debate about the relationship between graphic design and fine art. What have some of your thoughts, motivations and processes been around your relationship between graphic design and fine art?

    슬기와 민의 스튜디오는 전시, 큐레이팅, 설치 등을 통해 순수 예술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래픽 디자인과 순수 미술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수 많은 논의가 있어 왔는데요, 이에 대한 슬기와 민의 생각, 동기나 계기들, 그리고 과정들에 대해 궁금합니다.

    It would be naive and misleading to ignore the differences between graphic design and fine art. After all, it’s socially divided, for many good reasons. But on a personal level, I don’t think that being too conscious of the differences is always productive. I think “work” is a much more complex process, which cannot be reduced to a certain state of mind or methodology. Any work, design or fine art, will involve a need to respect given constraints, a need to satisfy interested parties, desire to express yourself, desire to simply please your friends and beat your competitors, as well as the sheer excitement of creating something meaningful and beautiful from inert materials. I don’t believe design is purely about solving other people’s problems, no more than fine art is always about self-expression. Normally any work has both aspects.

    그래픽 디자인과 순수 미술에 차이가 없다고 믿으면 그건 지나치게 순진하고 무지한 생각일 것입니다. 아무튼 두 분야는 사회적으로 구분되고, 또 그런 구분에는 그럴듯한 이유가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개인적인 수준에서, 그 차이를 지나치게 심각히 받아들이거나 의식하는 것은 별로 생산적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작업’은 매우 복잡한 행위로, 특정한 마음가짐이나 방법론으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디자인이건 순수 미술이건 간에, ‘작업’은 정해진 제약을 지킬 필요, 관련된 이해당사자들을 만족시킬 필요뿐만 아니라, 그저 자신을 표현하려는 욕망, 친구들을 즐겁게 하고 경쟁자들을 따돌리려는 욕망 등을 모두 아우릅니다. 저는 디자인이 순전히 타인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활동이라고 믿지도 않고, 순수 미술이 순전히 자신을 표현하는 활동이라고 보지도 않습니다. 보통 ‘작업’에는 두 측면이 모두 있습니다.

    In conversation with many designers who are familiar with your work, the word confidence is quite frequently used. There is a bold maneuvering of type and graphics that seem thought out, structured and confidently restrained. At times it appears nothing else is necessary. Can you speak to this both in terms of process and formal output? Is this something you are conscious of?

    슬기와 민의 작업을 보아 온 디자이너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신있는’ 이라는 용어를 상당히 빈번히 사용합니다. 신중하게 고려한 듯 보이는 활자와 그래픽을 대담하고 교묘하게 구조화 시키고 대범하게 절제하여 사용합니다. 때로 그 외 다른 것은 전혀 필요치 않아 보입니다. 이에 대해 과정과 형태적 결과물의 측면에서 이야기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것이 바로 슬기와 민이 고려하고 있는 것입니까?

    We know we tend to keep things simple, and also other people see our work as restrained and even cold at times. It’s not about trying to be cool or “minimal.” We just try not to be pretentious. I don’t like to add something superfluous to what I feel is already done. On the other hand, we don’t try to reduce everything to its essential, either. We just want to be honest in our work.

    It’s also related to the healthy economy of work. Usually what is necessary has a solid ground, which you can argue about and discuss on. In order to add something that is not grounded and therefore not open to intersubjective discussion, you need to spend much precious time trying out different directions. The work becomes a hit-or-miss affair, so to speak. I don’t like it.

    저희가 되도록 작업을 단순화하려 한다는 점,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저희 작업을 두고 ‘절제되어 있다’거나 심지어 ‘차갑다’라고 말하는 점을 잘 압니다. 그렇지만 저희가 원하는 것은 ‘쿨’하거나 ‘미니멀’한 디자인이 아닙니다. 저희는 그저 ‘~체하기’를 싫어할 뿐입니다. 너는 이미 완성된 작품에 무언가 필요 없는 것을 더하는 게 싫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저는 모든 것을 핵심 요소로만 환원하려 애쓰기도 싫습니다. 저희는 그저 정직한 작업을 하고 싶을 뿐입니다.

    노동의 경제성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보통 필요한 일에는 견고한 바탕이 있고, 그 바탕은 논쟁이나 토론이 가능합니다. 바탕이 없고 따라서 간주관적 토론이 불가능한 요소를 더하려면, 그저 이런 저런 방향을 탐색해 보면서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운이 좋으면 일이 쉽게 풀리고,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만족할 때까지 가능한 모든 대안을 다 시도해 보는 수밖에 없는 거죠. 저는 그게 싫습니다.

    In Korea, there is this notion of ‘daechoong’, ‘daechoong’. Where if it just kind of works, a few adjustments can be made and somehow, it is sufficient. In your design work, everything seems very thought out and carefully placed. Is there an element of ‘daechoong’, ‘daechoong’, in your work? Can you share any insight on this concept of ‘daechoong’, ‘daechoong’?

    한국에는, ‘대충대충’ 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어떤 작업들에는, 어느 정도 수정이 이루어 지고 나면,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충분한 것이 되어 버립니다. 슬기와 민의 디자인 작업에서, 모든 것들은 매우 심사 숙고해서 주의 깊게 배치 한 것으로 보입니다. 슬기와 민의 작업에 ‘대충대충’의 요소가 있습니까? ‘대충대충’이라는 개념에 대한 의견이 있다면, 이야기 해 주실 수 있을까요?

    Closely related to daechung daechung is the notion of ppali ppali, meaning “quickly, quickly.” It has been embedded in Korean culture ever since the fast economic development began. You’re expected to get things done really quickly, and sometimes it’s humanly impossible to do everything in time, unless you do some things daechung daechung. We’re not an exception to this rule. When we have too much to do at the same time, we have to prioritize so that we can spend more energy on “important” things. We can’t honestly say we don’t compromise quality no matter what. I think that in our work, the daechung daechung attitude shows itself less through sloppiness, but more through formulaic application of proven solutions. In no way we are proud of it.

    ‘대충대충’과 밀접한 개념으로, ‘빨리빨리’가 있죠. 고도 산업화가 개시된 이후 한국 문화에 자리 잡은 개념이 바로 ‘빨리빨리’입니다. 무슨 일이건 빨리 해야 하는데, 때로는 그게 불가능하기도 하죠. 그럴 때 어떤 일은 대충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도 예외가 아닙니다. 동시에 여러 일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일에 우선순위를 매기고 ‘중요한’ 일에 시간을 배분하지 않으면 안 되죠. 저희가 그런 상황에서도 절대로 작업의 질을 희생하지 않는다고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저희 작업에서 ‘대충대충’은 엉성한 작품을 낳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안전한 해결책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절대로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죠.

    From several books and publications we’ve seen, you have an extremely proficient grasp of the nuances of Western typography. And it appears, atleast from our perspective, that some of these nuances have made their way into your Korean typography. Is this true? And if so, can you speak to this a bit?

    여러 책과 출판물에서, 슬기와 민은 로만 타이포그라피의 미묘한 느낌의 표현에 있어 상당한 능숙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적어도 우리가 생각 하기에는, 한글 타이포그라피에도 이러한 표현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이 부분에 대해 살짝 이야기 해 주실 수 있을까요?

    Well, both of us learned typography in Latin script first, then applied it back to Korean. Unlike Hongik University for instance, neither of the Korean colleges we went had a strong typography program at that time. In a sense, it was rather fortunate for us because we could take a fresh view on Korean typography. Also, it happened that we’ve done a lot of bilingual projects, so we could experiment on coordinating two different typographic systems.

    In any event, the difference between Western and Korean typography is only visible on a micro level: Korean typography has been westernized so thoroughly that it’s virtually undistinguishable from Latin typography on a macro level.

    저희 둘 다 로마자 타이포그래피를 먼저 배웠고, 그것을 나중에 한글에 적용했습니다. 예컨대 홍익대학교와 달리, 당시 저희가 다니던 대학에는 진지한 타이포그래피 교과 과정이 없었거든요.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다행스러웠다고도 말할 수 있는 게, 덕분에 저희는 한글 타이포그래피를 얼마간 신선한 시각에서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저희가 한 작업 가운데 다수가 한글과 로마자를 혼용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두 체계의 조화를 실험할 기회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서구 타이포그래피와 한글 타이포그래피 사이 차이는 미시적 수준에서만 눈에 띄는 것도 사실입니다. 한글 타이포그래피는 이제 너무나 철저히 서구화했기 때문에, 거시적 수준에서 그 차이는 사실 거의 없다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Similarly, in passing conversations, there appears to be limited resources and a finite number of both formally and functionally acceptable typefaces here in Korea. Having been able to work with a large number and variety of Roman typefaces, have you found graphic design using Hangul, to be challenging at all? If you could change one thing about Hangul type design, what might it be?

    다른 매체에서 말씀 하신대로, 이곳 한국에서는 형태나 기능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서체들이 그 수나 내용 면에서 한정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엄청난 수의 다양한 로만 타이포그라피들을 사용하여 작업 해 오면서, 한글을 이용한 그래픽 디자인에 어려움을 느낀 적이 전혀 없었습니까? 만약 슬기와 민이 한글 서체 디자인에 있어 단 한 가지를 바꿀 수 있다면,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요?

    It’s true that Hangul typefaces are limited, although the situation is getting better now. I wish there were more text faces with slightly different nuances. But the shortage can’t be an excuse for not producing interesting work. In some circumstances, limitation can be a blessing. You are forced to focus on substance when you have only a few useful typefaces at your disposal. You are less distracted by endless choices. Many people don’t differentiate Helvetica and Arial anyway.

    점차 개선되고 있기는 하지만, 한글 활자체 종류가 제한된 것은 사실입니다. 저는 뉘앙스가 조금씩 다른 본문용 활자체가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활자체가 부족한 사정이 흥미로운 작업을 못 하는 핑계가 될 수는 없습니다. 쓸만한 활자체가 별로 없을 때에는 오히려 내용에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무한한 선택 가능성 때문에 주의가 산만해질 염려가 없는 거죠. 아무튼 헬베티카와 에리얼을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요.

    In many a passing conversation, there is a shared thought that in Korea, design is just not appreciated. There is a largely uneducated population and lack of understanding for what is perceived to be ‘good’ design or the potential of design. Have you found this to be the case? And if so, have you experienced any specific road blocks or barriers in your work?

    한국의 다른 디자이너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한국에서 디자인은 그 진가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것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디자인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을 뿐만 아니라, 무엇이 ‘좋은’ 디자인인가 혹은 디자인의 잠재력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 역시  족합니다. 이런 경우를 발견한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슬기와 민의 작업에 있어서도 특별한 장애물이나 방해를 경험 한 적이 있습니까?

    It might be the case, but most of the people we have worked on are artists and curators who appreciate design, and who know what’s going on in international design scene. But sometimes I find it interesting to work with someone who doesn’t know much about design, than those who claim to know what is a good design. Their understanding of good design is usually saturated by prejudice, and it’s harder to break it when they are confident about their partial knowledge.

    그럴지도 모르지만, 저희와 함께 일한 사람들 대부분은 디자인을 이해하고 바깥 세상 디자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아는 미술가나 기획자였기 때문에 별 문제는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때로는 자신이 좋은 디자인이 뭔지를 안다고 자임하는 사람보다 오히려 디자인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편이 더 흥미로울 때도 있습니다. 디자인을 안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흔히 편견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자신의 편파적 지식을 확신하는 사람에게 새로운 접근법을 설득하기는 더 어렵습니다.

    There is also, from our observations, a limited number of resources in terms of Korean graphic design history here. Out of curiosity, what are your thoughts on this? While growing up and studying design, were there Korean graphic designers from the past whose work you admired or appreciated?

    저희가 본 바에 따르면, 한국 그래픽 디자인사에 있어 자원들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거에 디자인을 공부하고 성장하면서 존경하거나 좋아했던 한국 그래픽 디자이너가 있습니까?

    The history of graphic design we we understand it in Korea is quite short, but I don’t think it’s such dramatically shorter than the history of western graphic design, which only started in the last century, too. The history of typography is a different story. Western typography has enjoyed almost unbroken history that goes back to at least 16th century, while in Korea, there is a real break between the long history of printing press and modern typography. So we don’t have much historical resources to tap. But to my thoroughly modern mind, it’s not a serious problem. We just have to deal with present problems with whatever resources available.

    I don’t think we have someone from the past who we particularly admire. Of course we have been influenced by many designers, but they are mostly contemporary designers, who are still working.

    한국에서 우리가 아는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는 무척 짧지만, 그렇다고 그 역사가 서구 그래픽 디자인사보다 어마어마하게 짧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서구에서도 그래픽 디자인은 20세기 들어 발생한 분야니까요. 물론 타이포그래피 역사는 다른 이야기이죠. 서구 타이포그래피는 적어도 16세기 이후 거의 단절 없이 이어져 왔지만, 한국은 오랜 활판 인쇄 역사와 현대적 타이포그래피 사이에는 뚜렷한 단절이 있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활용할 만한 역사적 자원이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현대주의자인 저에게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쓸 수 있는 자원을 제대로 써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니까요.

    저희가 특별히 공경하는 역사적 디자이너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저희는 여러 디자이너에게 영향을 받았지만, 그들은 대부분 당대 디자이너로서, 지금도 활동하고 계신 분들입니다.

    Having spent a significant amount of time outside of Korea, are there some thoughts, processes or methodologies that you have brought back with you that have translated well?

    한국 밖에서 상당히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해석하여 가지고 돌아온 사상이나, 프로세스, 혹은 방법론 같은 것들이 있습니까? 이것들이 슬기와 민의 작업에 어떤 영향과 변화를 가져왔는지. 혹은 다른 디자이너들의 작업에도 변화를 가져왔는지 궁금합니다.

    We learned more conceptual approach to graphic design at Yale. It wasn’t a completely new approach, because before we went to Yale we had been always taught that a strong concept or idea should come first before you start making stuff. But I think we learned, particularly from Paul Elliman who was teaching there, that the approach could take a more extreme form. Not only the idea itself could be more radical, but it could also be presented in an uncompromising way. The same idea could become stronger when it’s presented in a confident manner, rather than diluted by design professionalism or formal mannerism. It’s something we are still trying to maintain in our work. I think it has translated well, because it’s not bound to specific formal attributes.

    예일 대학교에서 개념적인 그래픽 디자인 접근법을 배웠습니다. 그런 접근법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었죠. 예일에 가기 전에도 이미 선생님들은 작업을 하기 전에 뚜렷한 개념이나 아이디어를 세우라고 가르치시곤 했으니까요. 하지만 예일에서 저희는, 특히 지도 교수 폴 엘리먼에게, 개념적 접근이 더욱 극단적 형식을 취할 수 있다는 점을 배웠습니다. 생각 자체가 더욱 급진적일 수도 있지만, 또한 생각을 더욱 비타협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는 점이었죠. 같은 생각이라고 직업적 습관이나 조형적 습관으로 물을 타지 않고 자신감 있게 표현하면 더욱 효과적이라는 교훈이었습니다. 저희는 지금도 그런 태도를 유지하려 애씁니다. 그리고 이 접근법은 특정한 조형적 성질을 전제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 맥락에서도 적용하기 좋다고 생각합니다.

    One of the themes we have recently been revisiting for Ohndohl, is that of lettering and its use in Hangul typography. We were wondering what your thoughts were of lettering and if it had ever made its way into any of your projects current and past?

    우리가 ‘온돌’을 준비하면서 최근에 다시 생각하고 있는 주제 중의 하나가, 한글 서체의 레터링과 그것의 활용에 관한 것 입니다. 레터링에 대한 슬기와 민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이 이전, 혹은 최근의 프로젝트에 반영 된 부분이 있는지도 알고 싶습니다.

    We have always liked modern Korean lettering, especially the crudely geometric 70s logotypes. But we’ve been rather reluctant to use those idioms, because it can easily be kitsch and nostalgic. Now you can see those letterings on many Korean indie bands’ record sleeves. But we did once try a crude-naive military-industrial geometric Korean lettering for the cover of Lee Young-june’s book Machine Criticism (http://www.sulki-min.com/wp/?p=5132). Obviously we wanted the title to look “mechanical.”

    If you define the term “lettering” as an activity to draw one-off letters for reproduction, what it usually called “calligraphy” in the context of graphic design is actually lettering, too. And we’re not a big fan of calligraphy as lettering. We don’t like any “human” gestures in a mechanically reproduced text, because it’s not real and therefore pretentious. We’ll probably never use calligraphic letters unless for ironic purposes.

    저희는 현대적인 한글 레터링, 특히 거칠고 기하학적인 1970년대 로고타이프를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시각 어휘를 차용하는 일은 되도록 피하려 했습니다. 복고주의 키치에 빠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최근 ‘인디 밴드’ 음반 표지에서 그런 레터링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도 한 번은 그렇게 거칠고 순진한 군대식/공장식 기하학 레터링을 쓴 적이 있습니다. 이영준 선생의 책 <기계 비평> 표지였죠. 표지 제호가 ‘기계적’으로 보이기를 원해서 그런 레터링을 활용했습니다.

    만약 ‘레터링’이 복제해 쓰려고 의식적으로 문자를 그리는 행위를 뜻한다면, 그래픽 디자인에서 흔히 ‘캘리그래피’라고 불리는 활동도 실은 레터링에 속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저희는 레터링으로서 캘리그래피를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기계로 복제하는 텍스트에 “인간적” 흔적을 남긴다는 게 실은 현실적이지 않고, 따라서 작위적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저희는 역설적 목적이 아니라면 ‘캘리그래피’을 절대로 쓰지 않을 것 같습니다.